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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나비효과(2004)' 리뷰

 

'나비효과'란 한 마리 나비의 날갯짓이 지구 반대편에서 태풍을 발생시킬 수도 있다는 카오스 이론으로 현재의 작은 변화 하나가 후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뜻이다. 이 영화는 다중우주가 아닌 과거가 바뀌면 현재에도 영향을 주는 평행우주의 설정이다. 

 

대강 줄거리를 알아보자

 

주인공 에반은 어렸을 때부터 순간순간 기억이 끊기는 단기 기억상실증을 앓고 있다. 병원에서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의사에게서 매일 일기를 써 기억을 기록하라는 권유를 받는다. 시간이 흐르고 대학생이 된 에반은 우연히 자신의 일기장을 찾아 꺼내 읽다가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자신의 능력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을 통해 지워버리고 싶은 기억, 어린 시절 큰 상처로 결국 자살을 선택한 첫사랑 캘리, 그리고 친구들에게 트라우마가 되었던 사건사고를 바꿔놓기 위해 과거로 되돌아간다. 하지만 처음엔 그거 켈리의 행복을 바라고 시작했던 일이었지만, 조금만 바꾸려고 했던 말이나 행동 하나하나가 후에 엄청난 불행으로 다가온다.

 

스포일러 주의

 

정말 치밀하게 잘 짜여진 영화다. 에반이 어릴 때 순간순간 기억이 끊기는 증상은 사실 기억을 잃어버린 게 아니라 아직 기억되지 않은 것이었다. 미래의 에반이 과거로 돌아와 그때의 기억을 체험하고 가기 때문이다. 감독은 이 기발하고 복잡해 어려울 수 있는 설정을 영리하게 스토리텔링 해준다. 어릴 때 잃어버린 기억은 미래의 에반이 그 당시에 쓴 일기장 기록으로 그때로 돌아가 잃어버린 줄 알았던 기억의 조각 퍼즐을 맞춰가기 시작하면서 연결시킨다. 

 

영화 '나비효과'가 디테일한 설정을 볼 수 있는 장면이 많이 있었다. 예를 들어 자꾸 기억을 잃어버리는 에반을 걱정하는 엄마는 최면술사에게 가 최면으로 풀어보려 하지만 기억이 잘린 부분으로 접근할수록 에반은 코피를 흘리며 점점 괴로워할 뿐 해결이 되지 않는다. 

 

최면치료는 주로 그 사람이 강한 정신적 충격에 의해 뇌가 자기 방어하기 위해 기억을 잃어버렸다고 착각하는 것을 끄집어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하지만 에반의 경우는 아직 기억되지 않은 미래의 기억이기 때문에 텅 빈 기억을 억지로 끌어내려고 하니 뇌에 무리가 간 것이다. 그리고 에반이 아버지의 가방에서 할아버지의 진단서와 옛날 앨범들을 발견하면서 이 능력은 최소 할아버지부터 유전이었다는 사실과 아버지의 타입슬립은 일기장 대신에 사진을 이용했다는 것 알 수 있어 보는 이에게 자연스럽게 전달이 된다.

 

에반과 엄마가 점쟁이를 만나 대화라는 장면이 특히 인상 깊었는데, 점쟁이는 에반의 손금을 보자마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면서 이 아이는 영혼이 없다는 얘길 한다. 생명선이 없었다. 즉 에반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사람이다. 이 장면은 정말 소름이었는데, 결말에 대한 복선이며, 에반이 아무리 발버둥을 쳐 미래를 바꾸려 해도 이미 정해져 있는 인간의 운명은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암시하는 듯했다. 

 

자신은 결국 장애인이 됐지만 모두가 행복해진 결과에 자살하려는 에반을 말리는 토미

 

에반은 시간여행의 나비효과로 제정신을 유지하기 힘들어 점점 미쳐간다. 존재하지도 않는 내 일기장을 당장 내놓으라고 같은 말을 반복하면서 의사를 협박하는 에반의 모습이 아무 영문도 모르는 제3자 입장에서 봤을 때는 누가 봐도 정신병 환자로 보이게 하는 연출은 정말 잊지 못한다. 후반 후에 되게 긴박한 장면인데 내가 느낌 감정은 긴장보다 감탄이었다.

 

이 영화는 극장판과 감독판이 있는데, 간단하게 보면 해피엔딩이냐 배드 엔딩이냐의 차이인데, 난 둘 다 멋진 마무리였다고 생각했다.

 

첫사랑 켈리를 처음 봤을 때로 돌아가 에반은 귓속말로 꺼지라고 욕설을 하여 애초에 만날 인연을 끊어버리고, 모두가 행복하게 잘 살아가지만 어른이 된 에반과 켈리가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쳤을 때 켈리는 에반을 알아보지 못하고 스쳐 지나가는 극장판 엔딩은 뭔가 씁쓸한 해피엔딩이었다. 해피엔딩이라... 최선의 엔딩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겠다. 극장판에서는 에반과 켈리는 서로 만나면 안 되는 운명이라고 얘기하는 듯하다.

감독판에서는 점쟁이가 에반에게 영혼이 없다는 떡밥을 던져주었고, 과거를 바꾸고 바꿨는데도 운명을 거스를 수 없다고 깨달은 에반은 엄마 뱃속의 태아 때로 되돌아가 탯줄로 목을 조여 자살하는 엔딩은 충격적이면서 여운이 상당했다. 

 

에반의 엄마가 점쟁이를 만난 후에 에반이 태어나기 전에 사실 두 번 사산 경험이 있다는 말을 해준다. 그 말은 에반의 형누나가 될 뻔했던 두 명의 생명도 에반과 똑같은 경험을 하고 똑같은 선택을 했다는 얘기다. 결국 에반의 엄마는 세 번째 사산을 하게 된다. 

 

나비가 없었으면 나비효과도 일어나지 않았다.

 

여기서 주위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에반은 세상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운명이었다.  엄마의 사산으로 에반은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고, 켈리와 친구들은 별문제 없이 잘 사는 엔딩으로 마무리된다. 

에반 아버지를 면회할 때 아버지가 갑자기 에반을 죽이려 했던 이유, 사산의 이유를 알았을 때는 뒤통수를 때려 맞는 느낌이 들 것이다. 이 감독은 천재가 분명하다.

원치 않게 특별한 능력을 발견하게 된 에반은 후회하지 않는, 모두가 행복하게 사는 삶을 바랬다. 어쩌면 자신 때문에 자살한 켈리를 다시 살리려고 과거를 바꾸면 토미가 죽고, 토미를 살리니 자신은 장애인이 되어있고 엄마는 폐암 말기다. 이렇게 이미 지나가버린 시간을 거슬러 바꿔버리는,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행동은 결국 부작용이 생긴다.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현재에 충실해라' 영화가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살면서 실수도 하고 평생 후회할 짓을 저지르곤 한다. 원래 인생은 매 순간 선택의 연속이며, 평생 후회하면서 사는 것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과거로 돌아가 바꾸고 싶은 망상을 할 텐데, 이 영화를 보면 지금 상태로 과거로 돌아가 봤자 별로 달라지지 않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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