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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라이프 오브 파이' 리뷰

이 글은 영화의 해석이 포함되어있어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를 보기 전에 우연히 표류하게 된 소년과 호랑이의 우정 이야기를 다룬 영화인 줄 알았지만 그랬다면 이렇게까지 여운이 남지 않았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색을 해야 이런 영화가 나올 수 있을까? 생각보다 주제가 무겁고 깊이 있는 영화였다. 

 

일단 주제를 떠나서 영상미가 엄청나다. 밤바다의 해파리씬이나 밤이 되면 산성화 되어 식인 섬으로 변하는 그 몽환적인 분위기도 그렇고, 전체적으로 색감이 너무 좋았다. 특히 파이가 바닷속에서 배가 침몰하는 지켜보는 장면은 구도도 좋았고 절망적이면서 성스러운 느낌이 들 정도였다. 이 영화를 아이맥스로 못 본 게 정말 아쉽다. 제발 재개봉 좀...

 

 

바다에서 가장 오랫동안 생존한 파이를 찾아온 작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이런 전개 참 좋다.)

 

대체적으로 평을 보면 도입부가 지루할 수도 있다는데, 우려와 달리 전혀 그렇지 않았다. 

 

파이가 배에 승선하기 전까지 20분 정도 유년시절을 보여주는데 뭐랄까... 버릴 장면이 하나도 없었다. '피신 몰리토 파텔'이란 이름을 가진 소년이 어떻게 '파이(π)'로 불리게 되었는지, 그리고 힌두교, 이슬람교, 천주교를 모두 믿는 파이에 대해 종교보다는 이성을 믿으라는 아버지와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인간의 마음을 종교로 이해할 수 있다는 어머니의 가르침을 보여준다. 후에 호랑이와 바다에 표류하는 중에 파이는 이성과 신앙을 왔다 갔다 하는 행동을 보이곤 한다. 그리고 파이의 여자 친구 '아난디'가 추을 추며 손으로 연꽃이 피는 모습을 표현하는 장면이 있는데,  나중에 식인 섬에서 연꽃을 펼쳐보니 사람의 치아가 들어있는 장면과 연관성이 있다.

 

이렇게 '라이프 오브 파이'는 대사나 이름, 장면 하나하나가 무엇을 상징하는데, 이 모든 걸 제대로 이해하려면 힌두교에 나오는 신의 유래에 대해 어느 정도 알아야 한다. (그게 아니면 나처럼 해석을 찾아보던가 ㅋㅋ)

 

식인 섬을 보면 밤에 신성화가 될 때 섬 전체 모습이 보이는데, 잘 보면 여자가 누워있는 모양이다.  이는 힌두교의 주신 '비슈누'가 잠든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 사랑과 자비의 신 '비슈누'가 잠이 들면 모든 게 허망한 세계가 된다는 파이의 대사처럼 허망한 세계를 밤이면 산성화가 되어 생물을 모두 녹여 삼켜버리는 식인 섬으로 표현된 듯하다.

 

 

'라이프 오브 파이'는 파이가 마지막에 들려준 또 다른 이야기 때문에 보는 이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열린 결말이 될 수 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어쩔 수 없이 살인을 하고, 살기 위해 식인을 하며 생존한 한 소년이 죄책감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대체시킨 존재들(호랑이, 하이에나, 오랑우탄, 얼룩말.. 즉 동물원의 동물들과 식인 섬)로 멋지게 시각화한 영화다.

 

그럼 동물들은 같이 구명보트에 탔던 사람들일 테고 식인 섬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잘 보면 추측할 수 있는 장면이 몇 있는데, 연꽃을 펼쳤을 때 뜬금없이 나온 사람의 치아를 봐서는 식인 섬 자체는 파이가 식인을 한 시체일 가능성이 크다. 파이가 섬에 도착하자마자 섬의 식물을 뜯어먹는 장면이나, 엄청난 수의 미어캣들은 시체의 구더기였고 호랑이가 미어캣을 잡아먹은 건 아마도 파이가 허기에 미쳐서 시체의 구더기까지 먹지 않았나 추측이 된다. 

 

파이와 표류하는 뱅골 호랑이 '리처드 파커'는 사냥꾼이 호랑이를 잡아 동물원에 등록할 때 실수로 서류가 바뀌는 바람에 사냥꾼과 호랑이의 이름이 바뀌어서 리처드 파커가 된 건데 의도적으로 호랑이를 의인화하려는 느낌이다. 마지막에 알 수 있지만 '리처드 파커'는 파이 자신이다.

 

초반에 맹수와 사람은 친구가 될 수 없다는 파이 아버지의 가르침 덕분에 구명보트에 호랑이와 단둘이 남아있을 때 파이는 끝까지 경계하고 피난처를 만들어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그래도 결국은 '리처드 파커'란 존재는 파이가 생존의 희망을 잃지 않고 끝까지 버틸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다. 파이가 표류 중에 그 호랑이를 구해주기도 하고 나름 길들이기도 하면서 어느 정도 공존하는 모습을 보여주길래 혹시나 동물과 인간 간에 아름다운 우정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조금씩 하게 되는데, 마지막에 뒤도 안 돌아보고 갈 길가는 리처드 파커의 뒷모습을 보면서 맹수는 길들여지는 동물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하게 인식시켜준다.  

 

결국 극적으로 270여 일을 버티고 구조된 파이는 선박사고 보험 문제로 침몰 원인을 조사하러 온 일본 조사관들에게 믿기 힘든 판타지스러운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역시 믿지 않고 "바나나는 물에 뜨지 않을 텐데...?"라며 의심을 한다. 그러자 파이는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배가 침몰하고 구명 보드에는 다혈질의 주방장과 다리를 다친 일본 불교신자, 그리고 파이와 파이의 어머니가 타고 있었고, 생존을 위해 주방장은 일본인의 다친 다리를 자르고 그걸 미끼로 이용해 낚시를 한다. 참다못한 파이의 어머니는 소리치고 주방장은 파이의 어머니를 바다로 밀어버린다. 파이는 이성을 잃고 주방장을 죽여버린다. 혼자 남은 파이는 생존을 위해 시체까지 먹으면서 바다를 떠돌다 구조되었다는 다소 충격적인 이야기.

 

전에 미화된 이야기와 대입을 해보면 주방장은 하이에나, 일본 불교신자는 얼룩말이고, 파이의 어머니는 바나나 더미를 타고  온 우랑우탄, 그리고 파이는 호랑이였다.

 

여기서 바나나의 존재가 좀 미묘한데, 정말 바나나가 물에 뜨는지 아닌지는 사실 별로 중요하지가 않다. 두 이야기에서 모두 바나나는 물에 떴기 때문인데, 그래서 어느 이야기가 진실인지는 확신하지 못한다. 좀 더 그럴듯한 두 번째 이야기를 들은 조사관들은 왠지 모르게 바나나로 태글 걸지 않고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그리고 첫 번째 이야기로 보고서에 올린다. 

 

 

모든 이야기를 들은 작가에게 파이는 말한다. 

"어떤 이야기가 마음에 드세요? 사람은 결국 자기가 믿고 싶은 게 진실이 됩니다."

이 말은 결국 인간과 종교, 믿음에 대한 대사다. 종교를 믿는 건 '신은 정말 존재하는가'는 별로 중요하지가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 신을 믿어서 자신에게 유익하다면 그 사람에게는 신이 존재한다는 것이 곧 진실이기 때문이다. 

 

P.S 바나나가 물에 뜨지 않는다는 건 조사관이 파이에게 진실을 듣기 위해 던진 낚시용 질문이었던 것 같다. 찾아보니 바나나는 물에 뜨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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