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현대인에게 단순한 주거공간의 개념을 넘어 심신을 재충전하고 세상으로부터 단절되는 안식처와 같다. 특히 1인가구가 계속 늘어나는 요즘, 집은 그 사람의 취향과 규칙이 온전히 반영되는 공간이다.
이런 평온한 공간에 균열을 일으키는 존재가 있다. 천장에서 쿵쿵대는 발소리, 끼이익 의자 끌리는 소리, 바로 층간 소음이다. 빌라에서 살다가 아파트로 오면서 유독 심하다. 뽑기 운이 좋질 않은지 소음은 간혹 새벽 2시까지 이어지며 사람을 지치게 한다. 윗집에 코끼리 같은 걸 키우는 게 아닐까?
사실 시골이나 변두리에 사는 게 아닌 이상 소음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소음에는 어느 정도 면역이 생기지만 유독 층간소음에는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가 있다.
자동차 소리, 공사장 소음, 사람 말소리 등은 피할 수 없는 일상소음이다. 정 듣기 싫으면 귀마개를 하거나 결국 익숙해져야 하지만 층간소음은 다르다. 불규칙적인 소리와 진동, 발소리나 의자를 이동시킬 때 나는 마찰음은 "누군가의 행동"에서 비롯된다는 점이다. 이런 점이 더 감정적이고 예민하게 받아들이게 되며 "저 사람은 발바닥에 망치가 달린 게 아닐까?"라는 의문이 든다. 특히 소리와 같이 느끼는 진동은 예민한 신경 스트레스를 자극하기 마련이다.
난 층간소음이 걱정돼서 집안에서 실내화를 신고 다니고 의자는 들어서 옮긴다. 소음자체보다 그 소음을 일으키는 사람의 그 이기적인 면에 스트레스를 증폭시킨다.
즉 밖에서 나는 차소리 같은 어쩔 수 없는 자연스러운 소음이 아닌 조심하면 안나도 될 소음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그리고 예측 불가능한 불규칙적 패턴이다. 매일 일정하게 들리는 소음이 아니라 어떤 날은 밤 10시, 어떤 날은 새벽 2시, 이렇게 매일 다른 시간에 다른 유형의 소음이 들리니 신경이 곤두서게 된다. 또 언제 들릴지 모르는 불확실성 때문에 불안하게 된다. 예측 불가능한 이 러시안룰렛이 사람 미치게 한다. 대체 윗집에서는 뭘 하고 있는 걸까?
이웃 간의 관계 때문에 말해야 하나, 참아야 하나 하는 고민하는 것도 스트레스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위층에 찾아가서 얘기를 해도 빌런을 만나면 소용없고 게다가 소음의 근원이 위층이 아닐 수도 있다. 아파트 구조적 문제로 천장에서 나지만 그게 위층이 아니라 아래층이나 옆집, 심지어는 대각선으로 위층에 옆집에서 타고 오는 소음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전에 위층에서 소리를 지르고 물건 떨어지는 소리가 며칠 동안 들리길래 경찰에 신고를 한 적이 있다. 몇 분 후 경찰이 단지에 도착하고 5분 뒤에 전화가 왔는데 위층에는 조용하고 아무런 문제를 못 찾았다고 경찰이 그대로 돌아간 적이 있다.
이러한 소음 패턴의 불규칙성, 진동, 인위적인 원인, 그리고 소음 근원의 불확실성까지 더해지는데 딱히 해결 방법도 없으니 층간소음으로 인한 살인사건이 가끔 뉴스에 나와도 이상할 게 없는 세상이 되었다.
이런 현대인들의 고충에 돈냄새를 맡은 시장은 마케팅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방음재 시장은 최근 몇 년간 급성장중이며, 개인용 방음부스나, 소음을 차단하는 '노이즈캔슬링' 헤드폰도 인기를 끌고 있다. 고급 아파트는 방음설계를 마케팅 포인트로 내세우며, 심지어 캐롯에서는 층간소음 이사보험까지 나왔다.
소음을 피하고 집중하기 위해 쉴 때 가끔 스터디 카페에 가는데 거기서는 TV노이즈 소리를 항상 틀어 놓는다. 이 소음이 다른 잡음을 상쇄시키고 일정한 소음이라 집중력에 도움이 된다.
이런 백색소음은 모든 주파수를 균일하게 맞추어 불규칙한 외부 소음을 덮어주는 "마스킹 효과'를 낸다. 층간소음과 같은 예측 불가능한 소음과 달리, 백색 소음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소리라는 점에서 위안을 주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ASMR이나 빗소리 같은 콘텐츠가 유행하여 현대인의 수면과 집중을 돕는다.
층간소음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현대인의 삶과 이웃 관계를 뒤흔드는 문제다. 기술적 해결책과 개인의 배려가 함께해야 한다. 나부터 실내화를 신고, 의자를 조심히 옮기며 작은 변화를 시작해 본다. 이웃과 함께 만드는 조용한 안식처를 꿈꾸며, 오늘도 백색소음에 기대 잠을 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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