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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어라이벌(컨택트)' 리뷰

 

 스포일러 주의

 

어느 날 느닷없이 전 세계 곳곳에 12개의 거대한 반원 모양의 미확인 미행 물체가 나타난다. 전 세계는 혼란에 빠지고 미국 정부는 우선 그들이 여기에 온 목적을 알아내기 위한 소통의 목적으로 능력 있는 언어학자 루이스와, 물리학자 이안을 데려와 그들과 접촉을 시도한다. 

 

하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자 루이스는 입고 있던 보호복을 벗어 경계를 없애고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가 소통을 시도하자 문자를 형상화해 보여주면서 반응을 보인다. 

 

인간의 문자는 왼쪽에서 오른쪽이든 순서가 있고 길면 길수록 자세한 의사를 전달할 수 있지만 그들의 문자는 원형의 표의문자로 하나의 원에 수많은 의미가 내포되어있는 구조였다. 하지만 원이라 시작과 끝을 알 수가 없어 어디서부터 해석해야 할지 모른다. 

 

 

오랜 분석 끝에 루이스는 그들의 문자를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미래의 환영이 보이는 능력이 생기게 된다. 결국 그들과 어느 정도 소통을 할 수 있게 된 루이스는 그토록 알고 싶어했던 지구 방문 목적을 알게 된다. 약 3000년 후에 인간의 도움이 필요해지기 때문에 인간들에게 선물(미래를 보는 능력)을 주기 위해 나타난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여기서 루이스는 선물을 무기로 잘못 해석해 정부는 급박하게 전쟁준비를 하며 위기해 처하지만 미래를 보는 능력을 이용해 루이스는 이 사태를 진정시킨다. 

 

이렇게 보면 좀 단조로워 보일 수 있는 스토리지만 이 영화를 보면 영화에 있어서 스토리를 크게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생각하게 된다. 

 

루이스가 그들의 언어를 이해하기 시작했을 때 미래를 보는 능력이 생긴다는 설정은 '언어가 사고를 지배한다.'는 사피어 워프 가설을 적용한 것이다. 이론이 아니라 가설이라고 되어있는 건 아직 그 주장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얘기인데, 언어가 문화나 사고방식을 결정하거나, 아니면 문화나 사고방식이 언어를 결정하거나 어차피 인과 순서의 차이이기 때문에 난 이 가설이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예전에 봤던 '어쩌다 어른'이란 프로그램에서 조승연의 '영어가 왜 어려운가'라는 강의를 봤는데, 결국 일본어보다 영어가 어려운 이유는 언어마다 그 뿌리가 다른데, 영어라는 언어의 유래나 사고방식, 문화(동서양의 문화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외우기만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어라이벌'은 테드창의 단편소설 '당신 인생의 이야기'가 원작인데, 사실 원작과 달리 그들이 지구 밖 외계에서 온 외계인이라는 근거는 명확히 보여주지 않았다. 순간이동을 한 것처럼 갑자기 지구에 나타났다가 그대로 사라지는데, 이런 연출은 마치 타임머신처럼 그들의 시간대만 바꿔서 다른 차원으로 사라지는 느낌이어서 우리와 같은 공간(지구)에 있지만 시공간의 개념이 달라지는 4차원 이상의 차원에서 온 인간의 후손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7개의 다리를 갖고있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이안은 햅타포드(7개의 다리라는 뜻의 그리스어)라 이름 붙여 준다.

 

햅타포드들은 현재 인류보다 몇천 년은 진보된 기술을 갖고 있는데, 그중에 미래를 보는 능력을 루이스에게 선물하고 간 것이다. 정확히 얘기하면 미래를 보는 능력이라기보다는 시간의 순서에 구애받지 않고 과거 현재 미래를 동시에 인식하는 능력(사고방식)이다. 그런 사고방식은 그들의 시작과 끝의 구분이 없는 원형 문자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우리의 언어는 예를 들어 낱말을 주어, 목적어, 술어의 순서대로 배치하고 소리를 내어 의사를 전달한다. 그래서 말이 끊기면 의사가 모두 전달되지 않는다. 하지만 햅타포드는 읽을 수 없는 그 원형 문자 안에 모든 걸 한꺼번에 표현해낸다. 저렇게 완벽한 표의문자를 구사한다는 것은 시간에 따라 흘러가는 삶을 사는 게 아니라 과거, 현재, 미래를 동시에 인지하면서 산다는 증거가 될 수 있다.  그렇기에 그들의 문자에는 시제가 포함되지 않을 것이다.

 

인터스텔라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나오지만 4차원 이상의 세계에서는 시공간의 개념이 달라지기 때문에 같은 장소에 있어도 서로 만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신카이 마코토의 애니 '너의 이름은'을 봤다면 이해할 듯) 

 

 

우리가 사는 3방향의 3차원에 시간의 방향을 추가하면 4차원의 개념인데, 그 당시 학계를 뒤엎었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서 알 수 있듯이 시간은 절대적이지 않다. 결국 이동속도가 빨라질수록 상대적으로 시간이 느리게 흘러간다는 내용이고, 시공간은 절대적인 기준점이 있는 게 아니라 피사체 하나하나가 기준이 되고 그에 따라 시간 기준이 상대적으로 달라질 수 있다. 속도에 따라 느려지는 시간을 사람이 체감할 정도가 되려면 빛의 속도에 근접해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체감은 불가능하고, 빛의 속도와 같아지면 시간은 정지될 것이며, 그 속도를 넘어서면 시간을 역행하게 될 것이다. 이게 바로 타임머신의 원리인데 이 이론을 실행하기엔 아직 기술력이 부족해 증명을 하지 못했기에 이론일 뿐이다. 

 

다시 말해 시간이 흘러가는 속도는 절대적인 게 아니기 때문에 훗날 시간을 마음대로 제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그런 단계를 이미 넘어섰고, 우리들의 시간 기준인 과거,현재,미래의 순서로 흘러가는 선형적인 시간 개념을 무시하고 시작과 끝을 동시에 인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의 언어를 통해 그런 능력을 갖게 된 루이스는 자신의 현재에서 딸과 대화를 나누는 미래를 동시에 인지하게 되는 장명이 영화를 볼 땐 마치 과거회상이라고 추측하게 되는데, 이 영화에서는 그 회상 장면을 과거라고 복선을 깔아 둔 적이 없다. 즉 관객을 속이려고 한 의도적인 연출이 아니었다. 단지 사람은 선형적으로 흘러가는 시간을 당연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반전 아닌 반전이 연출이 되었는데, 이런 부분에서 정말 대단한 영화라 느낀다. 

 

 

파티장에서 만난 샹 장군이 루이스에게 자신의 아내 유언을 말해줘서 전쟁을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면서 자신의 전화번호를 보여주는 18개월 후의 미래를 본다. 그리고 루이스는 중국에 있는 샹 장군에게 전화를 걸어 샹 장군의 아내 유언을 말해주는 부분에서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인지하면서 즉각적으로 힌트를 얻는 씬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미래(원인)가 먼저이고 현재(결과)가 나중이 된 건데, 햅타포드가 시간 흐름에 구애받지 않고 사고하는 방식이 루이스를 통해 잘 전달된 스토리텔링이었다. 

 

이 장면 말고도 미래에서 루이스의 딸이 아빠가 말해준건데 기억이 잘 안 난다면서 게임에서 승자와 패자가 없이 서로 윈윈이 되는 용어를 물어보는데, 현재의 이안에게서 답을 얻은 후 다시 미래의 딸에게 '논제로섬 게임'이라고 대답해 주는 장면들은 햅타포드가 왜 3000년 후에나 일어날 일 때문에 굳이 인간을 찾아왔는지에 대한 이해를 도와준다. 

 

여기서 시간이 흘러가는 건 현재만 있는 게 아니고 현재와 미래가 동시에 흘러갈 수도 있따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어서 이 영화를 평행우주론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는 좀 다른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과거를 기억하듯이 미래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본다는 것보다는 경험한다는 표현이 더 맞겟다. 

 

원작에서 보면 이안(물리학자)이 루이스에게 페르마의 원리를 설명해준다. 빛은 물속으로 비췄을 때 굴절하는 현상이 나타나는데, 빛이 물을 통과할 때 속도가 느려지기 때문에 빛이 도달하는 최종 목적지까지 최단 시간을 계산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목적론을 얘기하는 것으로 빛은 이미 출발하기도 전에 도달할 목적지를 알고 있기에 최단시간 루트를 계산할 수 있는 것이다. (마치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찍으면 최단시간 루트를 알 수 있는 것처럼) 

 

이 설명으로 루이스는 햅타포트의 문자를 해석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만 영화에서 이 부분이 빠진 게 아쉽다. 루이스와 햅타포드의 소통으로 인간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계기를 얻었고, 햅타포드는 3000년 후에 인간의 도움을 받을 수 있기에 서로 윈윈이 되는 논제로섬 게임이 되었다. 

 

인류에게 선물을 전달한 그들은 떠난다. 그리고 이어지는 루이스의 내레이션

 

"결과를 알고 있음에도

어떻게 흐러갈지 알면서도

난 그 모든 걸 껴안을 거야

그리고 그 모든 순간을 반길 거야"

 

루이스가 알게 된 자신의 미래는 비극적이었다. 

 

 

이 사건으로 만난 이안과 사랑에 빠지게 되고 아이를 갖게 된다. 시작과 끝이 같은 이름인 한나(HANNAH)라고 지어진 그 아이는 다 크기도 전에 불치병에 걸릴 것이며, 그 과정에서 이안은 루이스 곁을 떠나게 되고, 아이는 결국 죽게 될 것이다. 

병에 걸리기 전 한나가 아빠가 떠난 이유를 묻자 루이스는 자신이 남들이 모르는 것을 알고, 잘못된 선택을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딸이 불치병에 걸려 죽는다는 걸 미리 알고도 아이 갖는 것에 대해 동의한 루이스를 이안은 결국 이해하지 못했던 게 아니었나 싶다. 

 

영화 마지막에 루이스가 "만약 당신 인생의 시작과 끝을 모두 알게 된다면 뭔가를 바꾸겠어요? "라고 묻자 이안은 "아마도... 느끼는 걸 더 자주 말하려 할 것 같은데.. 잘 모르겠네요." 라며 대답한다. 

 

자신의 불행한 미래를 이미 알고 있지만 그것을 거부하려 하지 않고 순리에 따르기로 한다. 마치 미리 리허설을 경험하고 연기를 하는 느낌으로 다시 이안과 사랑에 빠진다. 끝은 불행할지라도 그 과정이 행복하기 때문에. (대신 이안의 서프라이즈 이벤트 이런 건 소용없겠지만..)

 

과거나 미래보다는 지금 현재가 중요하다는 걸 느끼게 해 줬다.

 

인터스텔라 같은 거대한 SF를 기대했다가 감성적이고 조용한 SF 드라마라 지루하다는 평이 있는데, 개인적으로 전부터 상당히 기대했던 작품이었고, 역시 실망시키지 않았다. 

 

드니 빌 뢰브 감독이 전작인 '시카리오'에서 조짐을 보이더니 결국 대박을 터트렸다. 결국 '라라랜드'가 14개 최다 노미네이트를 가져갔지만 이 작품도 8개 부분에 노미네이트 되면서 여태까지 볼 수 없었던 독창적인 영화라 극찬을 받았다.

우리나라에서 '어라이벌(arrival)'이라는 원제를 '컨텍트'로 바꾼 건 아쉽지만, 보고 나서 인생영화에 추가되었다. 나중에 내 자식에게도 한 번쯤 보여주고 싶은 영화다. 

 

햅타포드가 어떻게 미래를 알 수 있냐고 질문하면 '우리보다 훨씬 발전된 과학기술을 갖고 있고 우월한 존재이기 때문에 모든 걸 알고 있는 존재로 설정했다. ' 라고 대답하면 그만이지만 이 영화는 그 질문에 대해 여러가지 이론이나 가설을 바탕으로 영리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언어의 미학을 보여주는 영화였고, OST나 분위기나 '에이미 아담스'의 연기도 인상적이다. 특히 초반에 그들과 접촉할 때는 미지와 조우한다는 그런 긴장감을 잘 살려냈다. 

 

원작은 테트 창의 단편소설 중 하나인 '당신 인생의 이야기' 

이 영화는 미지와의 존재과 조우하는 상황을 이용해 루이스의 인생에 대해 이야기해 주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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