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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15) '미키 17' - 블랙코미디의 매력

By Drew Shannon

 
본 글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미루고 있었던 <미키 17>을 드디어 보고 왔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과 '설국열차'는 블랙코미디의 정점을 찍으며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작품이라 후속작이 발표되었을 때부터 왓챠 위시리스트에 넣어놨었는데, 북미보다 일주일먼저 국내에 개봉할 당시에는 왠지 선뜻 끌리지는 않았다.
 
물론 보면 후회 없는 감탄이 나올 게 분명했지만 도파민에 절여진 요즘 시대에 SF라는 장르에게 오락적인 요소나 화려한 볼거리를 내심 기대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부분을 기대하기엔 스타일이 명확한 감독인데도 말이다.
 
그런 이유인지 몰라도 '미키 17'은 후기를 보면 특히 해외보다는 국내에서 애매하다는 평이 많았다. 하지만 나는 애매하고 여운이 강한 영화를 좋아하기에 그런 평을 보고 오히려 기대가 되기 시작했다. 
 
엔딩 크레딧에 완벽하게 어울리는 음악이 나올 때 속으로 박수가 절로 나왔다. 괜히 봉테일이라 하는 게 아니구나 클래스가 다르다. 오랜만에 기대를 크게 상회하는 영화를 만났다. 세련된 미장센과 스토리텔링, 영리한 블랙코미디와 로버트 패틴슨의 1인 2역 연기까지 완벽한 하모니였다. 
 
 이 영화에서 풍기는 블랙코미디와 위트를 좋아한다. 인간의 어리석음을 풍자하는 건 전작에서부터 꾸준히 이어오는 스타일이고 '미키 17'에서 블랙코미디 코드는 내 취향을 정확하게 때렸다. 
 
미키 17과 미키 18은 영화를 흥미진진하게 이끌어가는 요소이다. 순한 맛 미키 17은 아직 성숙하지 않은 감성적인 소년의 모습이라면 매운맛 미키 18은 처음엔 사이코패스인가 싶을 정도로 과격하고 냉정하면서 나중에는 상황판단이 빠른 모습을 보여준다. 
 
원작 미키 7에서 굳이 미키를 10을 더 죽이고 미키 17로 각색한 건 이런 이유도 있을 것이다. 미국에서 법적으로 성인이 되는 나이가 18세이기 때문에 미키 17과 18은 소년에서 성인(남자)으로 바뀌는 것을 상징한다고 인터뷰에서 본 것 같다. 미키 17이 어릴 때 자기 때문에 차사고로 엄마가 죽은 거에 대해 자책하며 괴로워하는 걸 보고 미키 18은 그건 너 잘못이 아니라 자동차 결함 때문이라며 정확히 짚어주기도 한다. 

미키 17의 포스터가 여러버전이 있는데 다 맘에 든다.

 
 
이 영화에서 곱씹어봐야 하는 부분이 있다.
 
"죽는 건 어떤 기분이야?" 미키에게 묻는 대사다. 죽어봐야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을 멀쩡히 살아있는 사람에게 던진다. 하지만 사람이 죽으면 대답을 할 수 없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는 유명한 말도 있듯이(맥락은 다르지만) 
 
그런데 미키는 수없이 죽음을 경험해 봤기 때문에 그 무례한 질문을 "점심 뭐 먹었어?" 같은 안부를 묻듯이 물어본다. 
 
이 대사는 나중에 미키의 꿈에서 의미를 알 수 있다. 
 
일파는 미키에게 대뜸 소스를 찍어 먹어보라고 하지만, 소스의 정체가 불분명하니 미키는 먹어보기 전에 뭘로 만들었냐고 질문한다. (당연한 반응)  하지만 일파는 순서가 틀렸다고 한다. 일단 먹어보고 질문하라는 얘기다. 이 소스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도 모르는데 일단 먹어보고 질문하라니 아이러니하다. 먹어봤는데 먹어서는 안 되는 재료로 만든 소스라는 걸 알게 되면 몸에 돌이킬 수 없는 문제가 생길 수도 있는 걱정을 해야 하니 말이다. 
 
이는 인류는 항상 질문보다 행동을 먼저 해온 태도를 비꼬는 듯하다. 핵무기, 생명복제, 그리고 요즘 핫한 인공지능까지. 언제나 먼저 만들고 나서야 "이거 괜찮은 걸까?" 하는 경향이 있다. 
 
인간을 익스펜더블(소모품)로 쓰는 개념도 처음엔 편리해 보이지만, 나중에서야 문제가 될 수 있음을 인식한다. 기술이 정착된 후에야 윤리적인 질문을 던지는 현실을 비판한다. 
 
일파가 외계생명체 크리퍼의 꼬리를 갈아 만든 소스에 집착하는 행위는 이득이 되는 기술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이는 인간과 닮아있다. 그리고 이 영화는 이 장면을 통해 '우리는 지금까지 이런 방식으로 살아왔다.'라고 돌려 말하는 것 같았다.
 
"죽는 건 어떤 기분이야?" 이 질문은 순서가 틀렸다. 이 질문에 유일하게 화를 내는 건 미키의 여자친구 나샤 뿐이다. 미키가 아무리 죽음을 여러 번 경험한 소모품 인간이지만 살아있는 사람에게 그런 질문은 무례한 거라고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영화 속에서는 인간의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현실을 얘기한다. 뉴스에서 매일 전쟁과 사고, 자살뉴스가 나오지만 사람들은 악플을 달기도 하고 혹은 점점 무감각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이 장면 말고도 '미키 17'에서는 인상적인 장면이 많았다. 몇 가지만 얘기해 보면

  • 직원이 게임 엔딩을 보느라 받침대를 놓지 않는 바람에 새 미키가 프린트되어 막 뽑혀 나온 가래떡처럼 축 늘어져 바닥에 내동댕이쳐지는 장면.
  • 미키에게 저녁 식사 초대라고 속이고 배양육 스테이크를 먹인 후, 부작용이 바로 드러나자 머리에 총을 겨누고 쏘려고 하자 옆에 있던 일파가 "잠깐!" 하면서 멈추는 부분에서 그래도 연민을 느끼는 거 보니 인간성이 조금은 남아있구나 생각하는 찰나 바닥에 깔린 비싼 카펫을 치우고 돌돌 말아서 품에 안고 "됐어 이제 쏴도 돼" 하는데 그 와중에 옆으로 쏘면 피가 덜 튈까? 고민하는 장면.
  • 미키가 통역기를 달고 마마 크리퍼와 대화하는 장면. (인간과 비인간의 관점)
  • 티모가 적과 몸싸움을 하다가 사일로에 떨어트려 죽였는데 치열하게 사투를 벌인 흔적으로 귀를 물어뜯은 탓에 시체는 소멸되고 귀만 남은 상황. 
  • 티모가 자기 생존을 위해 친구인 미키를 지시한 데로 정확하게 토막을 내서 32K 카메라(자꾸 32K 강조하는 것도 웃겼다. ㅋㅋ)로 담아 보내려고 하는 장면은 친구인 자신을 살려달라고 너는 지금 두 명이니 아무나 하나 정해서 미키에게 제발 잔인하고 고통스럽게 죽어달라며 울면서 부탁하는 연기를 하는 장면.
  • 일파가 불필요하게 소스에 집착하는 장면

이런 장면들은 어처구니가 없으면서 때론 불쾌하고, 무례하기 짝이 없고, 혹은 이기적인 모습에 자연스레 웃음이 나온다. 덕분에 호불호가 강하지만 인간은 왜 블랙코미디를 좋아할까 생각해 봤다.
 

AI로 그림 넣으려다가 망한 미키 17 이미지

 
블랙코미디(Black Comedy)는 금기시되거나 비극적인 주제를 유머로 풀어내는 장르이다. 불편함을 웃음으로 승화시키고 그에 따라 사회적인 문제나 윤리적인 딜레마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기도 한다. 
 
정치적이거나 권력을 조롱하기도 하고, 심각한 상황을 가볍게, 반대로 웃긴 상황을 극도로 심각하게 묘사하기도 한다. 누군가에겐 불쾌감을 주고, 또 누군가에겐 웃긴데 '웃어도 되는 건가' 싶은 느낌을 준다. 이래서 블랙코미디는 꽤 고난이도 유머이다. 너무 강도가 약하면 풍자가 약해지고, 너무 세면 재미보다는 불편함을 느낀다. 기준이 없는 오묘한 경계를 맞추는 게 어렵고 적당하면 걸작이 된다. 
 
우리는 왜 웃게 됐을까? 웃는 게 인간에게 어떤 이로움이 있을까? 이런 의문점에 꽤 흥미로운 이론이 있다.
 
캘리포니아에 어떤 심리학 교수가 웃음의 근원에 대해 제시한 <거짓정보이론>이다. 
 
이 이론은 웃음이 거짓정보를 탐지하고 이를 통해 사회적 유개를 강화하는 도구로 진화했다는 주장이다. 즉 웃음은 원래 상대방의 의도나 감정을 파악하는 용도였을 가능성이다. 상대방이 웃는다면 "나는 너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라는 신호로 해석되지만 반대로 웃음이 불편하거나 어색하다면 이는 거짓정보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할 수 있다.
 
이 이론에 대해 내가 즐겨보는 라플위클리의 궤도님이 쉽게 설명한 부분이 있다.
 
몇 명의 사람들이 정글 속을 걷고 있는데 저쪽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일제히 긴장하며 위협에 대비하고 있는데 소리를 낸 게 알고 보니 토끼였다. 그러면 이제 웃음이 나오는거다. 이 웃음의 의미는 방금 이 경보가 거짓이었다는 걸 알리는 신호다. 그럼 옆에 사람들이 따라 웃는다. 위협이 사라져 안심해도 된다는 신호를 전달하는 것이다. (이러면 웃음이 전파되는 현상도 자연스럽게 해석되는데?) 
 
이 이론에 따른 자연스러운 웃음은 일상에서 심리적 긴장이 해소되는 상황이다. 그리고 타에 대한 심리적 우월감을 느낄 때나(비웃음? 슬랩스틱이 대표적이다) 논리적 인지적으로 부조화가 일어날 때 웃음이 난다. 
 
블랙코미디는 억지웃음이 아니라 불편한 현실을 과장하거나 뒤틀어 보여줌으로써 우리의 반응을 본다. 이거 웃기는 건가? 고민하게 되 자체가 이미 영화가 의도한 반응일 가능성이 크다. 봉준호 감독은 이런 경계를 맞추는데 탁월한데, 기생충과는 다르게 미키 17은 평이 많이 갈리는 것 보니 대중적인 코드는 아닌 듯하다. 
 
아무튼 불편함과 유머 사이에 묘한 카타르시스를 주는데 '미키 17'은 그 어려운 걸 성공적으로 해냈다.

포스터에서 표정 하나로 캐릭터가 표현이 되다니.

 
 
 
이 리뷰는 개인적인 해석입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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