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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스 라이프

# 1. 라스트 오브 어스 - 정의란 무엇인가

정의란 무엇인가 정의는 소수를 희생한 다수의 행복일까?

 

얼마 전에 하버드대에서 마이클 샌델의 '정이란 무엇인가'의 강의 동영상을 보게 되었다. 20년 동안 최고의 명강의로 뽑히는 이 강의를 듣는 수백 명의 하버드 학생들에게 마이클 샌델은 처음부터 이런 질문을 한다. 

당신이 전차기관사라고 가정하자. 브레이크가 고장 나 시속 100km로 달리는 전차를 멈출 수 없는 상황이다. 철로 앞엔  5명의 인부가 작업을 하고 있어 이대로라면 5명의 인부가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이다. 안절부절못하는 사이에 오른쪽에 난 비상 철로가 보인다. 하지만 비상 철로에는 1명의 인부가 작업 중이고, 브레이크는 고장 났지만 핸들은 작동한다. 즉 5명이 죽을지, 1명이 죽을지 내가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어떤 선택을 해야 옳았다는 생각이 들까?

아마 대부분이 비상 철로에 있는 1명이 죽는 게 나은 선택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난감한 2가지 선택지뿐인 상황에서는 이게 최선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다수의 행복을 위해선 소수의 희생은 불가피하다는 공리주의가 적용된다 그런 게 대답한 학생 중 한 명의 이유를 들어보면 911 테러 당시에 펜타곤에 충돌하기 전에 지상으로 떨어져 자폭한 한 여객기의 조종사가 영웅으로 추대되었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그 여객기에 탄 모든 사람은 어차피 죽은 목숨이었고 펜타곤에 충돌할 경우에 추가 사망인원이 늘어나는 것을 막았기에 영웅이 된 것이고 다수의 목숨 vs 소수의 목숨의 가치를 묻는 위의 질문에는 적절하지 않은 대답이었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두 번째 질문은 한다. 당신은 기관사가 아니라 철로를 바라보며 다리 위에 서있는 구경꾼이다. 이번엔 비상 철로를 제외하고 브레이크가 고장 난 전차가 들어오고 있고 똑같이 철로 끝에는 5명의 인부가 작업 중이다. 그 때 당신 옆에 서있는 덩치 크고 뚱뚱한 남자를 발견한다. 그 사람을 밀어 철로에 떨어트리면 전차를 멈출 수 있고 5명의 인부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 

 

이번엔 어떤 선택을 해야할까? 대부분이 1명을 살리고 5명이 죽게 놔두겠다는 결과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사람의 목숨에 대해 자신의 행동이 직접적으로 개입되기 때문일까? 아까 적용되었던 다수의 행복을 위한 소수의 희생 원칙이 무너진다. 

이렇게 갈등이 되는 이유는 결과를 보고 도덕적 기준을 적용할 것인가? 아니면 도덕적 기준을 적용한 후 결과를 볼 것인가? 이 두 가지가 충돌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2013년 GOTY(Game of the year : 올해의 게임)상을 수상한 '라스트 오브 어스'

 

게임성도 좋았지만 스토리도 훌륭했기 때문에 플레이를 해본 많은 게이머들은 완벽한 게임이었다고 극찬한다. 

그 인기 때문인지 얼마 전에 게임 중간중간에 나오는 시네마틱 동영상을 편집해 3시간 정도의 무비 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와 보게 되었는데, 웬만한 디스토피아 영화는 쳐 바를 수 있는 수준의 몰입감이었다. 

'라스트 오브 어스'가 극찬을 받은 이유는 엔딩에도 있다. 어떻게 보면 지극히 평범한 마무리였지만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현실적인 진행형 마무리였다. 

 

 

여기서부터 게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음

 

 

게임의 스토리부터 살펴보자

 

어느 날 갑자기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휩쓸고 20년이 지난 현재 살아남은 사람들은 서로 생존을 위해 살인을 하며 살아간다. 14살 딸을 잃고 폐인처럼 살아가는 조엘은 얼떨결에 중요한 임무를 맡게 된다. 14살 소녀 엘리를 '파이어플라이'라는 단체에 무사히 데려가는 것. 엘리는 감염체(좀비)에 물리고도 변이가 되지 않는 면역체를 갖고 있는 유일한 인간이기 때문에 백신 개발을 위해 험난한 여정을 한다. 몇 번의 생사고비를 넘기며 겨우 도착하지만 파이어플라이는 엘리를 죽이려 한다. 백신 개발을 위해 엘리의 뇌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내가 조엘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떤 게 옮은 선택일까 하는 윤리적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엘리가 죽고 백신을 추출해 인류의 영웅이 될 것인가? 아니면 엘리를 살리고 전처럼 살기 위해 계속 남들 죽이며 살아야 할까? 

 

엘리는 기절한 체 수술대에 올라가고 암묵적 동의를 했다고는 하지만 그 사실을 알게 된 조엘은 엘리를 구해내고 파이어플라이 리더에게 망설임 없이 총알을 박아버린다. (리더가 살아있으면 어쨌든 파이어플라이는 끝까지 쫓아올 거라는 판단인 듯) 

 

엘리를 구출해 내고 차로 이동하면서 엘리는 마취에서 깨어나 어떻게 된 상황인지 묻자 조엘은 이미 엘리와 같은 면역을 가진 인간들이 많이 모집되어 있어 굳이 네가 필요하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한다. 

차에서 내려 숲으로 걸어가는 도중에 엘리는 발걸음을 멈추고 한 번도 말하지 않았던 자신의 과거에 대해 얘기한다. (자신이 먼저 진실을 얘기했으니 조엘도 진실을 말해달라는 뜻으로 보였다.) 그리고 아까 말했던 얘기가 진실인지 맹세할 수 있냐고 묻자 조엘은 맹세한다고 대답한다. 

 

 

조엘은 인류의 미래보다 엘리의 목숨을 선택한 것이다. 만약 자신이 엘리의 입장이라고 생각해 보면, 내가 죽어야 인류가 살 수 있다고 하면 내 의사와 상관없이 죽어야 맞는 걸까? 누구도 남의 생명의 생사를 결정할 권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이 법으로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당연하다고 인식이 되어있는 건 공리주의의 폐해이다. 엘리의 희생으로 다수의 목숨을 살릴 수 있을지 모르지만 조엘한테는 전 세계 인류보다 엘리 하나가 더 소중하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와 엘리 사이에서 선택권이 주어진 조엘은 자신의 가치 기준에 따라 엘리를 선택한 것은 납득할 수 있다.

엘리에게서 백신을 만들어내려는 목적은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서인데 대신 엘리는 죽어야 한다는 건 모순이다. 엘리는 면역이 확인된 순간부터 생명의 권리를 잃어버린 것이다. 희생을 권유하는 것이 아니라 강요하는 것이다. 

그런 이유인지 조엘은 마지막에 엘리에게 무슨 일이 있더라도 살아갈 이유를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엘리의 모델은 얼마전에 커밍아웃한 엘렌페이지다.

 

조엘이 이 게임의 주인공이지만 그렇다고 영웅은 아니다. 자신의 삶의 전부였던 딸을 잃고 20년간 폐인처럼 살아왔고 또다시 딸 같은 엘리를 잃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만약 엘리의 희생으로 백신 개발을 한다고 해도 성공할 확률이 100 퍼센트라고 장담할 수도 없는 상황이고, 성공한다고 해도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 이미 무법자가 된 세상에서 인간의 추악하고 비열한 모습을 많이 봐 온 조엘에게서는 이 비극적인 세계를 별로 달라질 것이 없거나 혹은 그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할 수 도 있다. 그렇다고 조엘의 이런 행동이 비난받아도 이상하진 않을 것이다. 어찌 됐건 바이러스로 멸망해 가는 인류를 저버렸기 때문이다. 

 

과연 정의란 무엇인가?  정답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이클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라며 마이클 센델을 까는 무수한 책들이 쏟아져 나오기도 했다. 이런 딜레마에 빠져나오려면 그냥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생각하고 선택해야 할 것이다.

 

회의론자들이 말하길 인간은 진리에 절대 도달할 수 없다고 한다. 정의는 하나의 가치에 의해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가치와 여러 가지 집단,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렇기에 모든 경우의 수를 고려해 최선에 다다를 수 있도록 스스로 공부하고 생각하는 힘을 길러야 하지 않을까?

 

라스트 오브 어스는 현재 영화화도 진행 중이고 후속작인 파트 2로 올해 출시된다. 

 

- 이 글은 마이클 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을 참고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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